안동 방문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이다. <징비록>을 쓴 류성룡의 위패가 모셔진 곳으로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한산>이 흥행하고 있는 요즘 더욱 뜻깊게 다가오는 역사적 장소이다. 특히 여름철 배롱나무가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우연히 이번 여행에서 시기가 잘 맞아 만개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병산 서원은 고려 중엽부터 안동 유타카 산에 맞는 교육 기관인 바람 악서당에서 시작됐다. 지방 유림의 자제들이 모여서 공부하던 곳으로 고려 말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 무렵, 풍악 서당의 선비들이 난리 속에서도 학문에 열중하는 것을 보고왕이 크게 감동해서 많은 서책과 사패지를 주는 유생들을 더욱 학문에 열중하도록 격려했다.200년이 지나면서 서당 근처에 가호이 많이 지어져점차 들끓는 유림들이 모여서 서당을 옮기는 장소를 물색하는 가운데 서쪽 사랑 류·함 선생님이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하회에 올 때 그 것을 선생님에게 문의했는데, 니시 아이 선생님이 병산이 가장 적당하다고 권하게 되고, 유림들은 선생의 뜻에 따른 1575년(선조 8)서당을 병산으로 옮기”병산 서원”로 고치게 됐다.1614년(광해 6)에 우복 전·교은세 장 속이쥬은, 토리 김·윤 안 전 본 안·다무스 등 문인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송 토크사를 창건하는 스승의 위패를 봉안했다. 출처-병산 서원의 홈페이지

병산서원은 사학으로서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곳이다.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보다 직접 방문해 보니 ‘역사의 숨결이 느껴졌다’는 뻔한 문구가 실감날 정도였다. 고상하고 아름다운 목조건물과 그 앞을 흐르는 낙동강… 이날은 흐리고 비가 내리고 강에 물안개가 끼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공부하다가 피곤하면 강변에 나가 물놀이를 하던 과거 사람들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여기서 공부하면 정말 공부가 잘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 고풍스러운 고건축물의 아름다움과 낙동강 은빛 모래사장, 구불구불한 물과 아름다운 나무들… 동양화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다. 정적인 분위기에 흔들리는 마음이 차분해지고 자연스럽게 치유된다. 한국 최고의 고건축물이라는 수식어가 단번에 이해됐다.
복례문

복례문은 사람에 따라 욕망과 탐욕의 유혹을 타계시키고 예로서 자신을 절제하여 유학의 종지인 인을 이루라는 뜻이라고 한다. 활짝 핀 배롱나무와 어우러진 풍경이 감탄을 자아낸다.
광영지
마침 이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고요한 와중에 연못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와 장면이 오감을 자극했다.https://blog.kakaocdn.net/dn/b1IyPy/btqwhhRCiQq/2qFA9nAuGb93BAVZezy99k/img.jpg만델 – 보물 2104호백미라는 단어를 실감케 한다. (병산서원에서는 ‘백미’라는 표현을 남발하게 된다) ‘만대루’는 두보와 주희의 시에서 인용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는데 하루 종일 바라봐도 싫지 않다는 뜻이다.누각 너머로 모래사장과 구불구불 흐르는 낙동강이 보인다. 건축에 문외한인 내 눈에도 절묘한 위치에 세워진 완벽한 건축물로 보였다. 우리 문화재는 익숙하기 때문에 사실 유럽 건축물을 봤을 때만큼 신기함과 놀라움으로 감탄할 일이 많지 않다. 그러나 역사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그저 평범한 국민 수준인 내 눈에도 보물은 보물이고 국보는 국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번에도 다시 한번 만대루를 보면서 보물은 보물이구나… 문외한의 눈에도 가치가 느껴졌다.신문 – 사당 출입구에 빨간색을 칠하여 부정한 것에 대한 접근을 막고 있다.신문 주변에는 커다란 배롱나무가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있다. 잠시 여기서 지낸 것 같아. 발길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이곳에 가기 전 서애 류성룡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본다면 공간의 의미가 더욱 깊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진비록>에 대해 다룬 간단한 유튜브 영상과 류승룡에 관한 네이버 링크를 첨부한다.계약 톰슨:/저 아가씨./행4부동4분노9류성룡(柳成龍, 1542~1607)은 임진왜란 때 선조왕을 수행하여 왜군을 물리치는 데 큰 역할을 한 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자는 이견, 호가 서애에서 관찰사를 지낸 류준영의 차남으로 태어나 풍산 류씨 중 가장 뛰어난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21세 때인 1562년 형 겸암 류은룡과 함께 도산으로 퇴계 이황을 찾았을 때 하늘이 내린 인재이므로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을 정도로 총명하고 명민하였다. 25세에 문과에 급제한 뒤 승정원 홍문관 사간원 등 관서를 두루 거쳐 이조 병조 형조 일도 거치고… naver.me요즘 나는 사람의 삶이라는 삶의 순간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에 빠져 있다. 김영수 작가가 북톡에서 신숙주에 얽힌 에피소드에 대해 언급하며 지나가라고 말한 것이 제 귀에 들었지만, 이후 우연히 안동 여행을 가서 여러 역사책을 읽게 되면서 점점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시시한 이야기라고 흘려버렸을 텐데… 역시 사람에게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좋은 메시지라도 내가 들을 준비가 돼서야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현재의 권세보다 그 너머를 생각하는 마음- 예전 같으면 교과서나 위인전에 어울리는 이야기라며 무시해 버렸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안동 여행은 매 순간 정수를 느낀 기분이다.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공간이 주는 신비, 흔적이 만들어내는 그윽한 기운이 나를 사로잡은 것 같았다.안동병산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안동병산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